요즘 주말에는 영 볼 TV프로그램이 없습니다. 예전에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이 처음 등장하고, 초창기 마리텔을 이끌었던 주역들이 다 빠져나가면서 최근에는 영 재미가 없더군요. 시청률도 예전만큼 나오지 않는 걸로 알고 있구요.
그런데 토요일의 제 채널 고정권을 확보한 유일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무한도전도 아니요, 그렇다고 마리텔은 더욱 더 아닙니다. 바로 '그것이 알고싶다(이하 그알)'입니다. 재미들여서 보기 시작한지는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이제 그 참 재미(?)를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것이 알고싶다를 제대로, 또 고정적으로 보게 된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원래 TV를 잘 챙겨보지 않는 타입이기도 하고, 또 토요일 밤 11시에는 당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마리텔이 있었던 탓도 있구요. 백종원이 말 그대로 하드캐리하던 마리텔은 이후에도 셰프들을 앞세워서 상당한 선전을 했었습니다. 게다가 프로그램 자체가 인터넷 개인방송을 표방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재밌고 경쾌한 주제들 위주로 흘러가게 되고 분위기도 매우 밝았죠.
그에 비해, 같은 시간대에 타 방송사에서 하는 그것이 알고싶다는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일단, TV 화면에 나오는 방송 스튜디오의 분위기부터 음울하고 어둡습니다. 이건 마치 저 어린 시절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토요 미스테리극장'과 비슷한 기분이 들게 합니다. 저는 겁이 많아서 그 프로그램에 거부감이 있었는데, 그래서 아마 그알도 좀 거부감이 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거기에, 마리텔에 비하면, 프로그램 특성상 다루는 주제가 무겁고 불편하며 때로는 잔인하기도 하죠. 매우 불가사의하고 알 수 없는 사건의 진실을 좇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주제와 또 진실을 파헤치려는 일말의 과정을 지켜보고, 또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그 기분이 매우 즐겁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래서 근 몇 달간은 토요일 밤을 마리텔이 아닌 그알과 함께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뭐, 그 시점부터 마리텔이 급속도로 재미가 없어진 탓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사회의 부조리라던가, 풀리지 않던 미제 사건이라던가, 또는 해결된 사건이라 믿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사건이라던가 하는 것들에 대해 재조명을 하고 무엇이 진실인지, 과연 무엇이 정의인지를 찾아가는 그 과정이 너무나도 흥미진진하게 다가옵니다.
특히나 어제 10월 1일에 방영된 엄궁동 2인조 사건 재조명은, 거의 그것이 알고싶다 방영분 중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레전드급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보는 내내 어찌나 흥미진진하고 몰입했으며, 또 막판에는 온 몸에 소름이 쫙 돋던지, 방송이 끝난 직후에도 그 여운이 쉽게 가시질 않더라구요.
어제 그알에서 다룬 엄궁동 2인조 사건은 약 20년 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부산에서 일어난 한 여성 살인 사건의 용의자들이 긴 세월 죄값을 치루고 출소한 다음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으로 새롭게 시작된 사건입니다. 당시 용의자로 지목된 최씨와 장씨는 살인사건이 있었던 장소에서 일어난 다른 경미한 범죄로 인해 붙잡혔고, 정황상 그들이 이런 범죄를 벌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형사들의 고문(방송에서는 가학행위라고 하더군요)으로 인해 거짓 자백과 진술을 한 것임이, 방송된 내용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충격적이었던 것은 당시 담당형사 세 명을 제작진이 직접 찾아가서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었는데, 집에 있었으면서도 없는 척을 하고 제작진이 갔는지 확인하는 것이 들킨 형사, '좀 봐주세요'라는 어이없는 말과 함께 자신의 입에 테이프를 붙인 형사, 그리고 자신은 언젠가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예견했다는 형사들의 모습을 보니 정말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용의자로 20여년을 교도소에서 지낸 장씨와 최씨가 억울함을 호소하고, 또 이렇게까지 그들의 누명이 벗겨질 것 같은 상황까지 온 것도 다 그들의 끈질긴 노력 때문이었죠. 그들은 교도소에 있으면서도 10여년간 세상 밖으로 자신들의 무죄와 억울함과 누명에 대해서 호소하는 편지를 계속해서 쓴 것입니다. 정말 대단한 정신력이지 않나 싶어요. 만약 저였다면 몇 개월, 아니 한 달도 못되어서 포기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드는 생각은, 만약 사형제도가 아직까지 시행되고 있어서 이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면, 진짜 진실이 무엇인지 당사자들 외에는 알지 못한채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을 것이란 겁니다. 물론 우리 나라는 아직까지 사형제도가 있으나 이는 표면적인 것이고 사형 판결을 내린 후 형 집행을 계속 연기함으로써 사실상 무기징역과 같은 처벌을 받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전처럼 선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형이 집행되었다면, 이 사건이 다시금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을까요? 저는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사람이었지만, 어제 그것이 알고싶다 엄궁동 편 방송 이후로는 마음이 조금 흔들리는게 사실입니다.
하여간에 오랜만에 정말 심장 쫄깃한, 거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그것이 알고싶다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제까지 봤던 그알 중에서 1등으로 쳐주고 싶네요. 드라마도 아닌데 기승전결이 거의 완벽했다고나 할까요? 여튼 정말 우리가 원하는 진실이 무엇인지, 또 사회적인 정의가 무엇인지 밝혀지고 또 제대로 실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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